“
여성가족부가 제대로 일을 하게 하려면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혜숙 위원장의 일갈이다. 11일 오전 국회에서 전 위원장을 만나 미투 운동으로 점철된 지난 1년간의 일들을 들어보았다. 20대 국회 하반기 그가 여가위원장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 사회는 미투의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전 위원장은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만,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투 운동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는 여성 인권 향상에 큰 획을 그은 해였다. 지난해 5월 광화문에서 미투 집회가 열렸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 16일 여가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상당한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했다. 이전까지는 각종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향해 ‘자기 관리를 못했다’, ‘개인의 문제다’ 등의 2차 가해가 이뤄졌다. 나는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본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개선의 시작은 ‘법’에서 시작돼야만 했다.”
-부담이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
“당시 여야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여가위원장으로서 여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여야가 뜻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23개의 미투 법안을 여가위는 전부 통과시켰다. 미투 관련 법안은 원포인트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데 여가위원들도 이견이 없었다. 9월 3일에 정기국회가 열리고, 열흘 만에 상임위에서 법안 23건이 통과됐다. 여야 대치 국면에서 매우 이례적이었다.”
-여러 ‘미투법’이 발의됐다.
“여가위에서 법안이 상정됐지만 여러 상임위가 걸쳐져 있었다. 이 때 국회조차 성인지 및 젠더 감수성이 높지 않음을 실감했다. 특수한 법이 필요하다고 여겨 만든 것이 데이트폭력·가정폭력에 대한 특별법이었다. 관련해 나는 성폭력을 당한 청소년에 대해 교육관이 전학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여가위에 제출했다. 이밖에도‘공무원 인재개발법’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회와 여성가족부간의 협조는 어떤가.
“여가부가 자체적으로 권한을 갖고 추진하는 일이 거의 없더라. 예산도 적다. 일례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불법동영상 삭제 지원도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조해야 한다. 여가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부처도 외소하다 보니 타 부처와의 협조가 원활치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16일에는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당정협의를 진행했고, 올해 1월 24일에는 체육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당정협의를 진행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께도 여가부처럼 작은 부처가 큰 부처에 건의만 해서 누가 듣겠느냐고 건의했다. 정부의 정책사업에는 예산이 따르기 마련이고, 배정된 예산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생긴다.”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현장에서는 개선까지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국정감사 당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방문했는데, 업무 환경이 너무 열악해 충격을 받았다. 수만 개의 불법 동영상을 10여명이 직접 확인·신고·삭제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트라우마가 생겨 식사를 못할 지경이었다. 11월 16일 당정협의회를 열어, 과기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함께 할 것을 촉구했다. 신속하게 삭제토록 시스템을 갖추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삭제 지원인력을 포함한 디지털성폭력 피해지원 인력이 기존 16명에서 26명으로 증원됐다.”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구속으로 일명 ‘웹하드 카르텔’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웹하드 카르텔’은 불법 음란물을 삭제 및 제재해야 하는 법망을 무력화시키고, 법의 미비점을 악용한 것이다. 최악의 카르텔이다. 12월 18일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웹하드 카르텔 가담자는 일단 징역형으로만 형사처벌 하게 됐다
. 불법음란물 유통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기소 전 몰수 보전신청과 국세청 통보를 강화할 방침이다.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연내 전기통신사업법도 개정할 예정이다. 현재 민간부문에만 맡겨져 있는 필터링 업무를 공공기관에서도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미투법’ 상당수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실정이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국회에는 약 100여건 가까운 미투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가 적절하게 대응하지는 못했던 것은 사실이고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성범죄자를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로 규정하는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예술인 복지법’, 성범죄의 형량과 벌금을 늘리는 ‘형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아울러 ‘양성평등기본법’, ‘여성폭력방지 기본법’ 등도 통과되는 성과가 있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가정폭력피해 유족이 국회에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여가부만으로는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랜 폐습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간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와 합의를 종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했다. 2차 피해에 대해서도 무감각했다. ‘강서구 주차장 살인사건’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어왔다. 더 이상 가족의 문제로만 이 사안을 바라봐선 안 된다. 가정폭력은 가장 악질적인 사회 폭력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가정폭력과 관련해 29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이중 6개 법안은 여가위 법안인데, 법률 재·개정 등 여러 대안책 마련을 위해 적극 동참할 것이다.”
-최근에는 체육계 성폭력이 터져 나왔다.
“체육계가 구조적으로 성범죄 사건에 취약한 구조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2007년에도 여자프로농구 감독의 성추행 의혹이 있었는데, 성적 지상주의 풍토, 선수의 앞날을 좌지우지 하는 지도자와 선수 간 경직된 상하관계 등 체육계의 폐쇄성은 그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국가대표 코치가 피의자가 된 큰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대응을 시작하는 점은 비판받아야 한다.”
-개선을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대책’이 아닌, ‘의지’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근본적인 개선 대책은 물론 성폭력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사 그리고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여가부가 조사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성차별·성희롱의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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