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대학생 때 지하철서 성추행 피해
“부끄럽고 참담한” 기억
30년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미투, 진화된 세대 보는 감격
어른들 잘못을 20대가 싸워줘
기업 여성임원 목표제 2월 협약
성평등 기업일수록 이익 높아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25일 오후 세종로 여가부 장관 접견실에서 미투 운동과 성폭력·성차별 해법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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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문제에 왜 이렇게 더 관심을 가지냐고요? 제가 피해자고 당사자니까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대학생 때 지하철에서 당한 성추행 경험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승객들로 꽉 찬 지하철 칸에서 그가 택한 최선의 방법은 가해자의 손을 꼭 잡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때는 “부끄럽고 참담한” 기억을 열심히 지우려 노력했지만 30여년이 흘러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미투’ 운동을 보며 그는 “아직도 이런가” 싶어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정말 젊은 세대들이 바뀌었구나”란 감회가 교차한다고 했다.
“자기가 당한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표현하고 ‘내가 겪은 걸 다른 누군가가 또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잖아요. 진화된 세대를 보는 감격이 있어요.”
진 장관은 성별 간 갈등이 불거질지언정 지금의 20대는 이전보다 성차별적인 인식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세대로 본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한국 사회의 성평등 현안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여성 10명 중 8명, 남성은 7명꼴로 우리 사회 성차별 문제에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그는 기성 언론으로부터 ‘갈등’이나 ‘혐오’의 주체로 호명되는 젊은 세대에게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했다. 기성세대의 잘못을 두고 20대끼리 대신 싸우는 일이 발생한다는 거다. 진 장관은 다만 “위 세대를 향해 문제제기와 비판을 하려면 (남녀가)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제 폐지가 가능했던 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손을 잡은 남성들이 함께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돌아봤다.
―최근 20대 남성들의 반발심이 커지고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걸 어떻게 보나.
“20대 청년들은 언제나 (정부에) 비판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성폭력에 대해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별도 처벌 규정은 하나도 없다. 전체적으로 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지원책을 체계화하는 내용이다.”
―새로운 페미니즘 흐름 중에 (‘생물학적 여성’만 허용하는) 혜화역 시위가 있다. ‘불편한 용기’가 불편하진 않은가.
“부탁하고 싶은 건 있다. 한 번쯤 우리를 믿어달라는 거다. 때론 과격하거나 경계를 넘나드는 방법들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번 멈춰 서서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혐오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지, 관련 제도들이 조금씩 정비돼가는 만큼 그런 (혐오와 같은) 부분도 멈춰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가부 장관으로서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제대로 먹겠다”고 진 장관은 말했다. 자신이 ‘총알받이’가 된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찍히는” 일을 줄어들게 만들겠다는 거다. 불편함을 이유로 사회가 미루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왜곡된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부분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 그가 생각하는 ‘제대로 욕을 먹는 방법’이다.
―‘양성평등’에서 ‘양’자를 떼는 것도 굉장히 공격당하고 차별금지법의 '차'자도 꺼내기 힘들다. 여가부가 성소수자 문제 앞에 오면 멈춰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치도 그렇지만, 행정부에서 정책과 법을 만들어내고 관철하는건 철저한 협상이더라. 저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성소수자 의뢰인들을 만났다. 제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삶의 영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뼈에 사무치게 경험했다. 그 손을 놓는다는 건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여성·가족·청소년 정책을 법을 통해 관철시켜야 하는 책임자로서 (간극을) 잘 조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진 장관은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는 것과 조직의 성별다양성을 높여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을 성폭력·성차별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꼽았다. 국민연금 투자 기준에 여성대표성 항목을 넣어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민간기업 여성 임원 채용목표제’는 그가 인사청문회 때부터 밝혔던 포부다.
―기왕이면 국방부와 협력해 군대에서 인권교육을 할 때 성인권 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을 함께 하는 건 어떤가.
“실제로 그것도 고민 중이다. 조직 문화를 개선하려면 다양한 형태의 교육이 전 영역에서 필요하다. 올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교육 콘텐츠를 다양화하는 게 목표다. 만들어지면 장관들이 다 모여서 교육도 받고 하는 거다. (웃음) (성평등 기준은) 매번 달라지니까 저 자신도 재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꼰대’가 돼 있는 것 아닐까 생각도 한다.”
―‘민간기업 여성 임원 채용목표제’에 대한 기업 등 현장 의견이 궁금하다.
“당장 다음달 말부터 기업과 협약을 체결한다. 개별기업과 함께 경제 단체와의 협력도 준비 중이다. 현실을 너무 모른다거나 준비가 안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수많은 전문가와 기업인을 만나며 공부하고 있다. 국민연금 등 사회책임투자 기준에 여성대표성 항목을 포함하는 건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일례로) 중년 남성 위주로 구성된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라 여성 임원이 많고 성평등한 문화가 있는 기업일수록 영업이익이 높다는 사례와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수익이 나니 ‘윈-윈’하자는 거다. 사회책임투자나 스튜어드십코드의 환경·사회·지배구조(
ESG
) 지표 등에 ‘이사회 여성 비율’과 ‘관리자 여성 비율’을 추가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이미 요청했다. 민간기업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미 그 전부터 목소리를 내고 계신 분들이 있다.”
―‘건강가정기본법’ 외에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할 수 있는 다른 법 개정도 단계별로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삶을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것인가 선택할 권리를 주고, 이들의 선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회는 통합과 안정을 이룰 수 있고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최근 결혼·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하고 1인가구, 비혼동거가구 등 가족형태도 매우 다양화되는데 국민연금·아파트 청약 자격기준 등 제도는 혼인신고 여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유연한 결합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제도와 법률이 개정돼야 한다고 본다. 간담회를 열고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공론화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의 소장 자리가 공석이다.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단 지적이 나온다. 연구소를 독립시키거나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정책 등은 검토하지 않나.
“향후 연구소를 확대·개편해 ‘위안부’ 관련 문제를 세계평화와 인권관점에서 재해석, 확장하기 위한 ‘여성인권과 평화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다. 명실상부한 독립기관으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등 공법인화도 추진하고자 한다. (‘1년 위탁사업’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사업 종료시점이 오는 3월이다. 연구소장 채용은 연구소의 사업추진 상황을 고려해 공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올해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폐지’ 위헌 여부 결정이 나오지 않을까. 모자보건법은 보건복지부 소관이긴 하지만,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여가부 차원의 논의 계획은 없는지 묻고 싶다.
“현행 임신중절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의 음성화를 야기해 여성의 건강권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부작용이 있다. 여가부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복지부가 실시하는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인식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문항이 포함되도록 조사과정에 협력하고, 관계부처와 임신중절 제도 정비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또 올해 건강가정지원센터에 전문상담사를 배치해 ‘비혼임신갈등 상담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모자보건법과 형법 등 성과 재생산 권리 증진을 위해 개선해야 할 입법과제에 대해서도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성평등 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여가부의 역할과 목표는 무엇인가.
“‘성평등 거버넌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영역별 성평등 문제에 대해 각 부처가 책임지고 개선할 수 있도록 주요 부처에 성평등 전담부서 설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이미 행정안전부 협의를 마치고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다. (현재까지) 전담부서 신설을 협의 중인 곳은 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고용노동부·법무부·복지부·경찰청·대검찰청 7개 부처다. ‘평등을 일상으로’라는 부처 슬로건처럼,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길에 앞장서겠다.”
호주제 폐지 운동으로 한번, 생활동반자법으로 다시 반대자들에게 ‘오적’으로 꼽혔던 그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다 듣고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선 또다시 ‘오적’이 되는 것쯤은 감수하겠다는 양,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44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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